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의 성격은 점점 더 굳어진다.
그건 생리적 노화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교정의 부재 때문이다.
스무 살이 넘으면 아무도 “그건 잘못된 태도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격의 교정은 청소년기에 멈추고, 그 이후로는 누구도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사람 원래 저래”라며 서로의 결함을 방치하고,
그 결과, 각자의 성격은 조금씩 뒤틀린 채 단단히 굳어진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맞다’고 더 강하게 믿는다.
경험이 쌓인 만큼 판단이 정교해졌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건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졌다는 증거일 때가 많다.
삶의 경험은 지혜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편견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진정한 지성인은 나이를 먹을수록 확신이 줄어든다.
그들은 ‘나는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힘든 일을 피한다.
그들은 지적받기를 싫어하고,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의 문제를 찾으며 마음의 균형을 맞춘다.
그렇게 방어는 두터워지고, 자아는 점점 더 좁아진다.
나는 그래서, 나이 들어도 내 결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듣기 싫은 말을 해주는 친구는 잔소리꾼이 아니라
나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거울이다.
자기성찰이 멈추는 순간, 인간은 성격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성숙이 아니라 퇴행일 수도 있다.
자기 점검이 없는 성장엔 단단함만 남고, 그 단단함은 결국 왜곡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