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문명화에 대하여

by 신성규

광기는 본래 파괴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의 과잉 상태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용량을 넘어 팽창할 때,

그 불균형한 밀도는 흔히 병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병이 아니라 창조의 전단계,

즉 형태를 얻지 못한 사유의 폭발이다.


나 또한 그 시기를 지나왔다.

어떤 사상이나 대상에 닿으면

잠을 잊고, 식욕을 잃고, 모든 정신을 빨려 넣었다.

사유가 너무 빨라 현실의 구조가 감당하지 못했고,

그 속도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나와 이야기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때, 광기란 과도한 의식의 온도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신의 에너지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식이란 불이고, 불에는 반드시 방향이 필요하다.

그 방향이 없을 때 불은 타인을 태우지만,

방향이 있을 때 불은 길을 밝힌다.

따라서 통제란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을 정하는 일이다.


나는 불을 끈 것이 아니라,

불을 조향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내가 배운 통제의 의미였다.

광기는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지만,

이제 그것은 폭발이 아닌 추진력으로 작동한다.

지능이란 감정을 죽이는 능력이 아니라,

그 감정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능력임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결국 인간 의식의 축소된 문명화와도 같다.

문명이란 무질서한 에너지가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이고,

개인의 내면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광기의 혼돈에서 출발한 사유는,

통제를 거쳐 구조와 언어의 형태를 갖춘다.

그때 비로소 한 인간은 스스로를 ‘조형’할 수 있게 된다.


광기를 완전히 제거한 인간은 창조하지 못하고,

통제를 배우지 못한 인간은 자신을 파괴한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인간은 불을 품되,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때 광기는 문명화되고,

불꽃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라 의식의 형태가 된다.


삶은 결국 의식의 기술이다.

광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질서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나는 여전히 불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불은 나를 태우지 않는다.

그 불은 나의 사유를 데우고, 세계를 비춘다.

이것이 내가 배운 생의 기술이며,

광기에서 질서로, 혼돈에서 형식으로 이행한 나의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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