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는 단 한 가지 감정으로만 살아간다.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은 구원이나 헌신의 형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붙들기 위한 마지막 구조물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나를 증명하는 행위’이며, 그 시선이 흔들리는 순간, 세계 전체가 붕괴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광기와 충동, 과도한 감정의 폭발은 모두 그 붕괴의 반향이다. 그녀의 내면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지 못한 채, 타인의 감정에 종속된 불안정한 거울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베티는 전형적인 경계성 인격장애를 보인다. 그녀는 버림받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반응 하나, 말 한마디에 자아 전체가 무너진다. 경계성 인격은 사랑과 증오, 이상화와 비하의 양극단을 빠르게 오간다. 베티에게 조르그는 한순간엔 신이었고, 다음 순간엔 배신자였다. 이 모순적인 감정의 진폭은 단순한 감정 기복이 아니라, 정체성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존재란 오직 타인의 욕망 속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베티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다. 조르그가 자신을 욕망해야만 그녀는 존재한다. 그 욕망의 끈이 느슨해지는 순간, 그녀는 무로 추락한다. 그녀의 폭력과 발작은 조르그를 파괴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관심을 되찾아 자기를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베티는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고, 그 파괴를 통해서만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 역설적인 생존 방식은 경계성 인격의 핵심이다 —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상처를 통해 사랑을 구한다.
임상적으로 볼 때, 베티의 감정 조절은 완전히 외부에 의존한다. 그녀의 자아는 타인의 반응에 의해 규정되고, 그 반응이 불확실할 때 감정은 폭발적으로 분출된다. 이것이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징인 감정의 불안정성과 충동성으로 이어진다. 베티의 행동은 파괴적이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결핍과 두려움이 있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안정된 자아를 구축하고 싶었으나, 사랑은 오히려 그 불안정함을 증폭시킨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나를 타자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베티에게 그 시선은 단순한 타자화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각하기 위해 타인의 눈을 빌려야 했고, 그 눈이 닫히면 존재도 함께 꺼졌다. 이때 그녀의 폭발은 철저히 실존적이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존재가 붕괴되는 소리다. 조르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단지 외로움이 아니라, 실존의 소멸로 경험되는 것이다.
베티의 사랑은 문학적으로 보면 낭만주의의 마지막 불꽃이기도 하다. 그녀는 세계가 조율해놓은 이성적 사랑의 틀을 거부하고, 감정의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그 절대적 사랑은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세상은 그녀의 강도를 수용하지 못하고, 그녀를 ‘미친 여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 광기의 이면에는 진실이 있다. 그녀는 사랑의 본질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사랑이란 타인의 세계 속으로 완전히 침투하려는 욕망이며, 그 욕망이 좌절될 때 인간은 자기 존재를 잃는다. 베티는 그 진실을 끝까지 밀어붙인 인간이었다.
그녀의 최후는 자멸처럼 보이지만, 실은 완전한 투명성의 순간이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기 위해, 그녀는 자기 존재를 스스로 거둔다. 그것은 파괴이자 해방이다. 정신의 붕괴와 존재의 자유가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역설. 베티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없애버렸다.
베티 블루는 경계성 인격 장애를 예술로 번역한 인간이다. 그녀는 불안정한 자아와 무한한 욕망이 만나 폭발한 결과이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구조적 결함을 몸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우리는 모두 그 경계선 위를 걷는다. 어느 날 누군가의 시선이 사라졌을 때, 세상이 갑자기 무의미해지는 그 순간 — 바로 그때, 우리 안의 베티가 깨어난다. 베티는 병든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를 끝까지 살아낸 자다. 그녀는 사랑의 경계에서 끝내 균형을 잃었지만, 그 추락 속에서 사랑의 진실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