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침묵한 자리에는 공백이 남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였다.
인간은 이제 진리를 ‘발견’하지 않고, ‘서술’한다.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세계는 실재의 공간이 아니라,
언어가 세계를 덮는 하나의 거대한 기호의 막이 되었다.
언어는 원래 실재를 지시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신의 부재 이후, 언어는 스스로 의미를 생산하는 체계로 변했다.
철학은 사유의 논리이기보다 언어의 구조가 되었고,
예술은 재현이 아니라 기호의 조합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진리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설득력 있는가”를 묻는다.
진리의 자리를 언어가 점령하면서,
세계는 ‘의미’가 아니라 ‘서술된 의미들’의 경쟁장이 되었다.
언어가 과잉되면, 의미는 희박해진다.
모든 것은 말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의미 있게 말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말의 숲에서 길을 잃은 채,
서로의 언어를 소비하며 존재를 확인한다.
그 속에서 진리는 더 이상 침묵 속에 있지 않고,
소음 속에 파묻혀 사라진다.
신이 침묵하던 시대보다,
언어가 떠들어대는 이 시대가 더 위험한 이유다.
모든 언어가 소모된 이후, 인간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침묵은 무지의 표식이 아니라,
의미의 절제이자 사유의 마지막 품격이다.
사유의 깊이는 언어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못한 것의 여백,
즉 언어의 한계에서 탄생하는 내면의 질서로 증명된다.
진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이제 그것은 말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언어의 잔해 위에서 살아간다.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언어는 인간이 세운 가장 정교한 신전이 되었지만
그 신전은 이미 금이 가고 있다.
언어가 무너진 자리에서만,
인간은 다시 침묵 속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사유의 길은,
신의 침묵을 지나 언어의 파편 위를 걸어
다시 ‘말 이전의 세계’로 귀환하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