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삶이 나를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예전엔 길가의 바람에도, 새벽의 공기에도,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
세계가 여전히 살아 있고, 나 역시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감각.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바뀌었다.
의미는 희미해지고, 감정은 둔해졌다.
이젠 아름다움이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아니, 감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미 그 아름다움의 죽음을 증명한다.
나는 그동안 생각했다.
삶의 애정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세계와 나 사이의 ‘전류’ 같은 것이라고.
그 전류가 흐를 때 인간은 살아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회로가 끊어졌다.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움직이고, 먹고, 자지만,
삶은 나를 통과하지 않는다.
이건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살아 있어서 고통스럽다.
너무 의식적이라서,
모든 것이 껍질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구조, 인간의 욕망,
그 속에 감춰진 기계적 반복을 다 꿰뚫어보게 되었을 때,
나는 놀랍게도 ‘살아있음’이 아니라
‘소외됨’을 느꼈다.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무너진다.
그들은 세상을 이해할수록,
세상과의 관계를 잃는다.
이해는 연결의 반대편에 있다.
사랑은 모를 때 가능하고,
삶은 여전히 미지로 남을 때만 빛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삶에 대한 애정이 식어간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너무 잘 알아버린 자의 슬픔’이라는 걸.
다시 사랑하려면, 다시 모를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무지해지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세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피로해졌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하루만큼은
생각 대신 감각으로 살아보기로 한다.
논리가 아니라, 체온으로.
그렇게, 다시 작은 불씨 하나를 붙여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삶의 애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