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광기

by 신성규

시인은 세상의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어떤 은밀한 공명을 듣는다.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낙엽과 인간의 기억, 도시의 불빛과 신의 침묵, 이런 것들이 시인에게는 하나의 문장 안에서 맞닿는다.

비유와 상징은 시인의 언어이지만, 동시에 정신의 지도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들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그 능력의 근원에는 언제나 위험이 있다 — 너무 많은 것을 연결지어버리는 감각, 그것이 바로 천재의 시작이자 조현의 그림자다.


비유란 A와 B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언어적 사건이다.

“달이 내 안의 거울이다”라는 문장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의미적 연합을 전제한다.

이때 시인의 뇌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한 신경 경로들을 동시에 점화시키며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이 과정은 뇌과학적으로 ‘연합적 사고’라 불리는데,

이는 천재적 창조성과 조현병적 분열을 동시에 설명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조현병은 과잉 연결의 병리학적 형태다.

뇌의 연합 영역이 너무 활발해져, 무관한 자극들 사이에도 인과와 상징을 만들어낸다.

하늘의 별이 자신을 감시한다고 믿는 것도, 언어의 뒤편에서 ‘과도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인 역시 그와 같은 연합을 경험한다.

다만 시인은 그 의미의 폭주를 문장으로 구조화한다.

시인의 언어는 폭주하는 의미를 형식으로 묶어내는 의식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래서 시인의 종이 위에는 언제나 두 가지의 선이 그어진다 —

의미의 선과, 광기의 선.


니체는 “광기는 개인에게서 나타날 때는 병이지만, 집단에서 나타날 때는 규칙”이라 했다.

시인은 그 경계에 선 존재다.

그는 사회적 규칙을 벗어나 신의 언어를 흉내 낸다.

랭보는 “나는 타자다”라 했고, 플라스는 언어 속에서 자신을 태워버렸다.

이들의 시는 정신적 붕괴의 기록이 아니라, 붕괴를 언어로 통제하려는 최후의 시도였다.

그들에게 시란 치료가 아니라,

정신의 잔해를 구조하는 방식이었다.


시인은 상징과 현실 사이의 통로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그가 세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인식에서 현실은 너무 단단하고, 상징은 너무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시인은 흔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성이 예술을 낳는다.

모든 위대한 시는, 자아가 무너지는 순간에 구조를 되찾으려는 의지의 흔적이다.

시인은 무너지며 쓴다.

그래서 시는 언제나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이자 기도다.


시인은 조현병 환자와 닮았다.

둘 다 세상에 숨겨진 관계를 너무 많이 본다.

다만 시인은 그것을 문장으로 길들인다.

그의 광기는 언어의 형태를 갖는다.

그러므로 시는 단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정신의 과잉 연결을 견디기 위한 구조적 장치다.


예술은 광기와 질서의 교차점에서 태어난다.

그곳에서 시인은 위험하게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그는 세상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언어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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