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 집이 돈이 많았다면, 나는 공부로든 예술로든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잠재력의 낭비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
나의 지능, 집중력, 관찰력 같은 것들이 환경의 벽에 부딪혀 방향을 잃어버린다는 자각.
세상은 언제나 ‘능력 있는 사람은 결국 성공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재능은 발현의 토양을 만나야만 꽃을 피운다.
나에게 그 토양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정치로 몰락했다.
그 몰락은 집안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가족의 정서를 영구히 변형시켰다.
나는 그 후손으로 태어나, 언제나 ‘몰락한 가문’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나는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관찰했다.
그것은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계보학적 탐구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조상의 죄의식과 실패를 은밀히 계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혈통주의를 경계한다.
나는 차별을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유전자라는 언어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관찰할 뿐이다.
마치 강아지의 품종을 보는 듯한 냉정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을 본다.
지능, 감정, 예민함, 에너지의 지속성 같은 것들은 단순히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건 발현의 문제다.
나는 그것을 우월의 논리로 보지 않고, 생물학적 리듬의 차이로 본다.
그러나 이 사유가 종종 위험한 선을 넘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늘 내 안에서 윤리와 생물학이 싸운다.
돈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다는 건 단순히 ‘소유’의 결핍이 아니다.
그건 정서적 생태계의 붕괴다.
부모는 불안했고, 미래는 불투명했으며, 사랑은 계산과 죄책감 사이에서 왜곡됐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언제나 감정적으로 과각성 상태에 놓인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긴장하고,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며 산다.
그래서 나는 근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근성을 가질 만큼 정서적 에너지가 축적되지 못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건 사실 심리적 안정의 축적물인데,
내 성장기에는 그런 축적의 시간이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조상의 실패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건 역사의 일부이자 나의 구조다.
다만 나는 그 실패의 정서가 내 안에서 어떻게 재조합되는지를 탐구한다.
몰락의 후손에게는 특유의 ‘감정 구조’가 있다.
겸손과 분노가 교차하고, 죄책감과 자존심이 동시에 작동한다.
나는 이 모순된 정서가 때로는 창의력으로, 때로는 자기파괴로 작용한다는 걸 안다.
세상은 나에게 근성을 요구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근성이란 게, 상처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구조인가?
정서적으로 무너진 아이에게 근성을 말하는 건, 물이 새는 컵에 ‘물을 더 부으라’는 말과 같다.
나에게는 근성 대신 지적 몰입이 있었다.
그 몰입이야말로 내가 감정의 파편 속에서도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공부든 예술이든, 나는 몰입 속에서만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몰입은 동시에 외로움을 낳았다.
몰락한 가문의 후손은 언제나 ‘내면의 과잉’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과잉은 세계와의 부조화를 낳고, 그 부조화가 사유를 낳는다.
내 삶은 실패한 조상의 그림자를 복구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새로운 유전자의 표현이다.
유전은 과거의 데이터지만, 발현은 현재의 의지다.
나는 내 안의 상처받은 유전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형태로 발현시키는 중이다.
철학으로, 사유로, 글로.
가난이 나를 망친 게 아니다.
정서적 붕괴가 나를 허물었다.
그러나 그 붕괴 위에서 나는 오히려 생각을 배웠다.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기이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복원하려 하는지를.
나는 여전히 몰락한 가문에서 자란 아이로서,
이 세상에서 ‘복구의 철학’을 배워가고 있다.
그 복구란 단지 돈이나 명예의 회복이 아니다.
감정의 생태계를 다시 세우는 일,
무너진 자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
그리고 그 위에서 새롭게 진화한 인간으로 서는 일이다.
어쩌면 나는 실패한 혈통의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몰락 이후의 첫 번째 의식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유전자를 다시 쓴다.
몰락의 기억 위에서, 사유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