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도자들

by 신성규

그녀는 말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결혼을 지켰어.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은 단순한 미화가 아니었다.

그건 사랑을 ‘행복의 제도’가 아니라

‘고통의 견딤’으로 이해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감정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인내를 수행하는 수도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사랑의 낭만보다 관계의 의무를 더 높이 두었다.

그건 냉정한 이상주의였다.

폭력과 상처 속에서도 관계를 끊지 않은 부모의 모습에서

그녀는 파괴가 아니라 지속의 미학을 보았다.

그 선택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의 길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왜 누군가 고통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왜 사랑을 수행처럼 받아들이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성별이 사라지고, 감정의 진폭이 줄어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사람은 서서히 중성적으로 변한다.

욕망의 파도가 잦아들면,

남자와 여자는 다투는 대신 서로를 이해하려 든다.

그때야 비로소 ‘결혼’이라는 구조가

감정이 아니라 습관과 윤리로 유지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오래된 고통을 함께 감당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녀의 말은 내 안에 하나의 문장으로 남았다.


“사랑은 사라지지만, 견딤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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