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생리학

by 신성규

남자도 여자도, 나이를 먹고 중년을 넘어가면 다시 아이가 된다.

그러나 그 아이는 무지의 아이가 아니라, 모든 경계를 통과한 뒤 되돌아온 통합의 아이다.

지성의 효율은 청년기에 절정에 이르지만, 지성의 통합은 중년 이후에 완성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생리와 감정, 영혼의 구조가 재편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은 뇌의 명령이 아니라, 몸의 언어로부터 비롯된다.

호르몬이 말하고, 신경이 기억하며, 감정이 판단을 완성한다.

젊은 시절의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외부를 확장하고,

젊은 여성은 에스트로겐을 통해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중년 이후, 두 호르몬은 서로를 향해 내려앉는다.


남자는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여자는 단단해진다.

이때의 변화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이성적 편향의 붕괴다.

경쟁과 보호, 확장과 돌봄의 경계가 사라지고,

인간은 내면의 양성을 동시에 체험하기 시작한다.

몸은 이성(理性)이 아니라, 이성(異性)을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연다.

이 생리적 평형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전체로서의 자신을 느낀다.


그때의 도덕은 강요나 교리로부터 자유롭다.

그것은 생리적으로 ‘가능’해진 도덕,

즉 감정과 이해가 동시에 성숙한 단계의 윤리다.

나는 이 시기를 도덕의 생리학적 완성기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생리적 통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영혼은 감정의 복잡성 속에서만 자신을 확장한다.

그 점에서 예술가, 특히 시인은 인간 통합의 정점에 선 존재다.


훌륭한 시인은 흑백논리를 넘는다.

그들에게 선과 악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사랑과 증오, 열정과 냉소, 신성함과 타락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한 시 안에서 공존한다.

그들은 양가감정을 이해하는 영혼을 가졌기에,

선악의 붕괴 속에서도 감정의 조화를 찾아낸다.


예술가가 느끼는 모순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 스스로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사랑과 상실, 절망과 희망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언어로 녹아든다.

그 속에서 인간은 ‘선한 자’로서가 아니라, 전인(全人) 으로서 완성된다.


시인은 감정의 화학적 평형을 먼저 도달한 자들이다.

그들의 내면은 이미 중년 이후의 인간이 도달하는 경지 —

즉, 남성과 여성, 선과 악, 냉정과 열정이 같은 심장 안에서 숨쉬는 상태 — 를 미리 산다.

그들이 작품을 쓰는 행위는 곧 통합의 실험, 혹은 영혼의 자기 조율이다.


젊은 지성은 빠르지만, 미숙하다.

그것은 판단하려는 지성이지, 이해하려는 지성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인간은 점차 그 반대로 진화한다.

판단은 느려지지만 이해는 깊어진다.

이해의 깊이는 곧 용서의 깊이이며,

그때의 용서는 윤리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에 가깝다.


그것이 바로 지성의 통합이다.

지성의 통합이란, 사고의 양극을 포용하는 능력이며,

그 중심에는 도덕이 아니라 감정의 성숙이 있다.

도덕은 명령이 아니라 정서적 공명이다.

몸이 통합되고, 감정이 통합될 때

인간의 도덕은 더 이상 외부의 규범이 아니라 내면의 생리학이 된다.


남자도 여자도 결국 다시 아이가 된다.

그러나 이번의 아이는 무지의 아이가 아니다.

모든 이분법을 통과하고 나서야 돌아온 무구(無垢)의 상태다.

그때의 순수함은 경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완전히 흡수한 뒤 남은 ‘본질의 투명함’이다.


그 시점에서 인간은 도덕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다.

도덕은 감정의 예술이 되고, 예술은 감정의 도덕이 된다.

그 두 영역이 만나는 자리에서 인간은 더 이상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이 지점을 인간 지성의 진정한 정점이라 부르고 싶다.

지능의 효율이 아닌, 이해의 총합으로 완성되는 지성.

생리와 감정, 이성과 예술이 화해하는 곳.

그곳에서 인간은 마침내 다시 ‘아이’가 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이해해버린 존재다.

keyword
팔로워 137
작가의 이전글사랑의 수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