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사랑의 전이

by 신성규

사람은 자신을 때린 손을 증오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래 지나면

그 손의 형상을 닮은 손으로 타인을 때리게 된다.


폭력은 대물림되고,

상처는 세대를 건너뛰어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억압받은 자가

언젠가 억압자가 되는 이유는,

증오가 외부를 향해 던져진 화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묶는 쇠사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깨닫는다.


증오가 정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는 사실을.

업보는 초자연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회로다.


미움은 전염되고,

복수는 전이를 통해

다른 이름의 폭력이 된다.

그러나 사랑은 단절이 아니다.

사랑은 고리를 끊는 행위다.


원수를 사랑하라 —

이 구절은 신비주의나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미래의 폭력자로 재생산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한다.

기도의 언어가 아니라,

의식의 작동 원리다.


생각은 물질이 되고,

감정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운명이 된다.


그러니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높은 의식이다.


증오를 버린다는 것은

세상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오늘,

나를 상처준 존재들을 떠올린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나를 분리하기 위해서.


사랑은 동화가 아니다.

사랑은 해방의 기술이다.

나는 그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모든 것을 사랑해보자.

그것은 세상을 껴안는 행위가 아니라,

내 마음을 다시 내 손에 돌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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