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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화를 넘어서는 인류의 윤리

by 신성규

인간은 언제나 악을 외부로 내몰아왔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악행을 ‘비인간적’이라 부르며, 마치 그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인 양 단정한다. 우리는 그를 ‘악마’라 부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안도한다. 악마는 인간이 아니니까, 나와 다르니까.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큰 비극을 만든다. 악을 분리하는 순간, 인간의 복합성이 지워지고, 이해의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악마화는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사회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악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렇게 구축된 ‘절대적 악’은 언제나 새로운 희생자를 낳는다. 과거의 마녀사냥이 그랬고, 오늘날의 온라인 여론재판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악마’로 규정하는 순간, 그의 상처와 내면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봉쇄된다.


그러나 인간의 악은 단순히 사라져야 할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상처와 결핍, 그리고 통제되지 못한 욕망의 구조적 산물이다.

범죄자의 기질, 폭력적 성향, 파괴적 언행 속에도 그 사람의 생애, 두려움, 배제의 기억이 숨어 있다.

따라서 진정한 윤리란 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근원을 이해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시도 속에서 형성된다.


악마화를 넘어서려면, 우리는 인간을 다시 읽어야 한다.

도덕은 법과 제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와 치유의 언어가 없는 윤리는 언제나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악을 악으로만 다루는 사회는 결국 더 정교한 악을 생산한다.

이제 인류는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의 이분법을 넘어, 상처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악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악의 옹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의식이 한 단계 진화하는 과정이다.

나는 인간의 악마적 기질조차 그 근원을 추리하고 치유하려는 문명을 믿는다.

그 문명만이, 심판이 아닌 회복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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