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라고 착각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인간의 감정은 사실 여부보다 체험의 깊이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게임은 이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다.
영화나 문학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영화와 문학은 감상이 끝난 뒤 현실로 돌아와 해석을 요구한다. 우리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서사를 삶에 대입하며 의미를 끌어낸다. 반면 게임은 해석 이전에 체험이 먼저 일어난다. 플레이어는 관찰자가 아니라 행위자다. 생각하기 전에 선택하고, 이해하기 전에 움직인다. 그 안에서의 경험은 현실로 번역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하다.
이런 구조는 인간이 무엇에 만족을 느끼는지를 잘 드러낸다. 우리는 단순히 보는 것보다, 직접 참여하고 통제하는 순간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감각은 현실 여부와 무관하게 인간에게 강한 보상을 준다. 그래서 게임은 하나의 독립된 경험 공간으로 작동한다. 현실을 대신하지 않지만, 현실만큼 분명한 감정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사업과 서비스의 본질도 드러난다. 사업 역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특정한 경험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사람들은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처럼 느껴지는지를 함께 소비한다. 서비스 안에서의 나는 능력 있어 보이고, 선택을 잘하며,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일 수 있다. 이 감각은 단순한 편리함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특히 강력한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이 서비스 덕분에 나는 더 똑똑해지고, 더 효율적이며, 더 앞서 있다는 느낌. 이는 허영을 자극하는 것과는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이 확장되는 순간에서 깊은 만족을 느낀다. 잘 설계된 서비스는 사용자를 과시하게 만들기보다, 스스로를 긍정하게 만든다. “나는 이걸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조용한 자기 승인, 그 감각이 반복 사용을 만든다.
그래서 현대의 서비스는 점점 게임에 가까워진다. 설명하거나 설득하기보다, 직접 체험하게 한다. 고객은 관객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되고, 서비스는 하나의 무대가 된다. 사용자는 그 안에서 선택하고, 성과를 확인하고, 작은 성공을 축적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더 나은 버전의 자신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만족을 만든다.
물론 이런 경험이 과도해지면 현실과의 괴리가 생길 수 있다. 서비스 속에서의 나는 유능한데,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껴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좋은 서비스는 현실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감각을 남긴다. 통제감, 선택의 감각, 해낼 수 있다는 인식은 현실로 돌아와서도 작동한다.
결국 사업의 핵심은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남기느냐다.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위치를 제공하는 것, 자신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 순간의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사람을 움직인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경험할 때 가장 깊은 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사업은 거래를 넘어선다. 그것은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고, 감정을 다루는 일이며, 사람들에게 “너는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는 감각을 건네는 일이다. 잘 만들어진 서비스는 조용히 말한다. 이 안에서의 너는 꽤 괜찮다고. 그리고 그 믿음 하나가, 다시 현실을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