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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보면

by 신성규

사람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드러난다.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기록에 가깝다. 무엇을 아끼고, 무엇에는 망설이지 않는지, 그 기준에는 말보다 솔직한 내면이 담긴다. 사람은 말로는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지만, 반복되는 지출 앞에서는 거의 숨기지 못한다.


돈을 쓰는 방식에는 품격이 묻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품격은 고급스러움이나 가격표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비싼 것을 사면서도 공허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지출 안에서도 분명한 취향과 방향성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선택의 일관성이다. 그 사람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지가 지출의 패턴으로 드러난다.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쓴다. 이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고민을 줄이기 위해, 반복되는 노동을 외주화하기 위해 지갑을 연다. 이런 선택에는 삶을 다루는 태도가 보인다. 반대로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을 사기 위해 돈을 쓴다. 보여지는 이미지를 관리하고, 비교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소비한다. 이 역시 욕망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전자는 삶의 밀도를 높이려 하고, 후자는 인정의 밀도를 높이려 한다.


사람의 지출을 들여다보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보인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관계에 돈을 쓰는 사람도 있고, 불안을 누르기 위해 물건을 쌓아두는 사람도 있다. 어떤 소비는 필요에서 나오지만, 어떤 소비는 결핍에서 나온다. 문제는 결핍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하는 소비다. 그런 소비는 만족을 주는 대신 점점 더 큰 공허를 남긴다.


흥미로운 것은, 성숙한 사람일수록 돈을 써서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소비는 조용하다.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경험에 쓰는 돈, 배움에 쓰는 돈,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데 쓰는 돈. 이런 지출은 당장의 화려함은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결을 바꾼다.


반대로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은 소비로 자신을 보완하려 한다.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 더 빠른 것을 통해 현재의 불안을 덮으려 한다. 이 역시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소비는 자신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잠시 잊게 만든다. 그래서 반복된다. 만족은 순간적이고, 지출은 습관이 된다.


결국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는 방향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어디에 돈을 쓰는지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백이다. 그래서 지출을 들여다보는 일은 타인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 내가 무엇에 쉽게 지갑을 여는지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이 아직 비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어쩌면 품격이란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돈이 없어도 유지되는 가치의 밀도일지도 모른다. 돈은 그 밀도를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지출을 할 때마다, 아주 작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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