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속 철학

by 신성규

요즘 오피스텔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난다.

진짜로 싸운다.

말이 날아다니고, 감정이 술 취한 복서처럼 휘청거린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벽은 어차피 다 맞는다.


예전 원룸에 살 때는 달랐다.

그땐 신음소리가 났다.

밤마다 들려왔다.

인생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하여튼 몸은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짜증은 났지만, 묘하게 정직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생각한다.

싸우는 소리가 나을까,

신음소리가 나을까.


이런 걸 고민하고 있는 내 인생이 좀 웃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귀마개를 사거나 이사를 알아볼 텐데

나는 침대에 누워서 철학을 한다.

싸움이 더 인간적인가,

섹스가 더 인간적인가.

대단한 질문이다.

노벨상은 못 받아도 술자리에서는 한 번쯤 써먹을 수 있다.


싸움 소리는 길다.

너무 길다.

과거를 들추고, 미래를 협박하고,

“너는 항상”이라는 말로 모든 걸 요약한다.

신음소리는 짧다.

맥락도 없고, 책임도 없고,

끝나면 조용해진다.

이 점에서 신음소리는 굉장히 예의 바르다.


물론 새벽 네 시의 신음은

인류애를 갉아먹는다.

하지만 싸움 소리는 시간 가리지 않는다.

아침에도 싸우고, 점심에도 싸우고,

서로 사랑해서 같이 살기 시작했을 텐데

지금은 왜 이렇게 열심히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깨닫는다.

문제는 소리가 아니다.

상태다.


신음은 아직 서로를 만지고 있다는 증거고,

싸움은 아직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짜로 끝난 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난다.

TV도 안 켜지고,

웃음도 없고,

욕도 없다.

그건 평화가 아니라 사망 판정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못 낸다.

싸움이 나은지, 신음이 나은지.

둘 다 인간이고,

둘 다 좀 한심하고,

둘 다 살아 있다는 소리다.


오늘도 벽 너머에서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사랑하고,

나는 캔맥주를 하나 더 딴다.

벽은 여전히 얇고,

인간은 여전히 시끄럽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소리 덕분에

내 방이 너무 조용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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