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의 본질과 임신 욕망에 대한 분석

by 신성규

어떤 시기가 있다. 많은 여자들이 이십대 후반 무렵에 임신 이야기를 꺼내는 시기다. 그것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무렵의 공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하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말한다. “임신시켜 달라.” 어떤 사람은 결혼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조차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 말들을 듣다 보면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라기보다 더 복잡한 심리가 느껴진다.


그 심리의 한 축에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있다. 인간의 몸은 시간을 느낀다. 특히 여성의 몸은 사회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시계’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외모가 최고의 자산처럼 취급되는 사회에서는 그 감각이 더욱 강해진다. 젊음이 자본처럼 소비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가치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계산하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 임신은 사랑의 결과라기보다, 시간을 붙잡는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깊은 감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경우 그 말들 속에는 불안이 섞여 있다. 늙어간다는 공포,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예감. 그런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보다 “아이를 갖자”는 말로 번역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관계를 묶는 가장 강한 끈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할 수 있지만, 아이는 변하지 않는 연결을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임신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관계의 보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자주 도망쳤다. 책임이 두려웠고, 묶이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와 평생 연결된다는 생각은 때때로 숨이 막힐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관계의 끝에서 한 발 물러서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혼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고, 왜 아이를 갖는가.


어떤 옛 연인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를 닮은 아이만 만들어준다면 귀찮게 하지 않을게.” 그 말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 말 속에는 사랑도 있었고, 동시에 불안도 있었다. 내가 떠나더라도 아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어쩌면 그것은 유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연결을 만들려고 한다.


아이를 통해 남자를 붙잡으려는 시도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욕망은 언제나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 두려움, 생존 본능, 사회적 압력, 외로움. 그 모든 것이 한 문장 안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그때 정말 아이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는 책임이 생겼을 것이고, 어떤 선택들은 애초에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그 삶이 더 나았을지, 아니면 더 어려웠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생각은 남아 있다. 언젠가는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사랑의 결과일 수도 있고, 단순한 생물학적 충동일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금 우스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내 두뇌의 잠재력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내가 다 쓰지 못한 어떤 가능성들. 내가 살면서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어떤 사고의 힘. 그것이 나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존재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물론 아이는 유전자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부모의 의도를 대신 실현해 주는 도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자신을 넘어 계속되고 싶어 한다. 이름이든, 작품이든, 사상이든, 혹은 아이든.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혼인의 본질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이어 붙여 하나의 긴 이야기로 만드는 시도. 사랑과 두려움, 욕망과 책임이 뒤섞인 채로 이어지는 인간의 오래된 방식.


그 속에서 아이는 때때로 전략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복잡함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이것이 욕망인지, 아름다움인지. 아직도 나는 그 답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성적인 농담의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