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마셜 플랜

고지능자와 저지능자의 지능 포위론

by 신성규

현대 민주주의는 ‘과반수’라는 단순한 수적 기준에 의존한다.


인간 지능은 정규분포를 이루기에, 다수는 중간 지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간 지능자는 체제 순응성과 도덕적 자기 기만을 갖추어 있으며, 비판적 지성과 원초적 공감을 모두 결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중지능자의 패악을 제도화하는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투표함 앞에서 평등하다. 철학을 모르든, 공동체의 구조를 이해하든 말든, 오직 ‘한 표’만이 모든 가치를 무차별적으로 평평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인간은, ‘하나의 표’로 동일한 무게를 지녀야 하는가?

그 ‘표’의 집합이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가?


현대 민주주의는 과반수를 요구한다.

그러나 과반수는 대부분 ‘중지능자’다.

그들은 충분히 똑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겸손하지도 않다.

제도를 믿지만, 제도의 철학은 묻지 않는다.

스스로를 ‘상식’이라 부르지만,

그 상식은 언제나 자기이익에 길들여진 본능일 뿐이다.


고지능자는 외로워진다.

세상을 구조로 읽고, 질서로 해석하고, 윤리로 연결하는 자들은

그 이해의 깊이만큼 고립된다.

그들은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종종 피로에 지쳐 입을 닫는다.


저지능자는 고통받는다.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체제에 의해 계속 상처받는다.

노력은 무너지고, 방향 없는 질책이 반복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이 아니라,

존엄한 역할이 보장된 사회 구조다.



이제 남은 것은, 바로 ‘중간’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체제의 충직한 개다.

말 잘 듣고, 효율을 신봉하며, 상명하복에 익숙하다.

하지만 생각하진 않는다.

비판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이들은 고지능자를 비웃고, 저지능자를 멸시한다.

그들은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소수의 이상을 억압하며, 다수의 자기확신 속에 모든 것을 태운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왕관을 쓴 오랑우탄이다.

문명을 유지하지만, 문명을 개척하진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구조를 제안하려 한다.


고지능자는 철학과 윤리를 설계한다.

저지능자는 보호받으며 공동체의 실행력 있는 구성원이 된다.

중지능자는 행정과 기술에서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다.


이것은 신계급주의가 아니다.

이는 역할 기반의 조화사회론이며,

모두가 다르게 평등해지는 사회를 위한 지능 분업적 질서다.


우리에겐 이제 새로운 형태의 회담이 필요하다.

이념이나 군사도 아닌, 지능을 중심으로 한 문명적 대화.


‘마셜 플랜’이 전후 재건을 이끌었다면,

‘마인드 플랜’은 새로운 인간 구조를 설계할 것이다.

지능의 위계가 도덕의 위계가 아니라,

공존의 구조로 번역되는 시대를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던 철인정치는 공감이 없었고,

현대의 민주정은 기준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이, 이해받지 못하는 자를 책임지는 구조다.


우리는 귀족정을 다시 소환하되,

지능과 윤리, 공감을 모두 갖춘 신(新)귀족정치를

이 시대에 걸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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