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하는 순수함에 대하여
나는 종종 세상을 ‘이해하는 자’로서 살아간다.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고통이기도 하다. 세계의 구조를 꿰뚫는 시선은 종종 외로움을 낳는다. 사람들은 나를 낯설어 하고, 나는 그들의 사고를 숨막혀 한다. 그들이 내게 등을 돌릴 때, 나도 그들을 보며 등을 돌린다. 어쩌면 그것은 상호 무지의 춤이다. 서로가 서로를 낯설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예외가 있다.
바로 ‘순수한 여자들’이다.
이유 없는 웃음, 때론 세상을 전혀 모르는 듯한 눈빛. 사람들은 그들을 어리숙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세계의 정보가 축적되지 않은 무지가 아니라, 세계의 정보로부터 아직 오염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그녀들은 언어 이전의 언어로,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그녀들의 존재는 나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는다.
나는 세계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이다. 구조를 파헤치고, 의미를 해체하고, 본질을 탐사해왔다. 이 여정은 나를 성숙시켰지만, 동시에 순수함을 소거해왔다. 그러나 내가 버린 건 감정적 순수함이지, 존재적 순수함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나는 타인의 눈에는 냉철해 보일지 몰라도,
내 안에는 절규하는 영혼의 순수가 있다.
그것은 모든 걸 알아버린 후에도, 여전히 믿고 싶은 어떤 것이다.
나는 그녀들을 보호하고 싶다.
현실 감각이 부족한 그녀들이 세상의 태풍에 휘말릴 때,
나는 구조를 알고 있으므로 방패가 되어줄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의 순수는 나의 어둠을 씻는다.
나는 너무 많은 구조를 알고 있기에,
때때로 ‘살아가는 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녀들의 숨결은, 그런 나에게 존재의 원초적 이유를 되돌려준다.
나는 나를 모르는 세계에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미래를 향해 글을 쓴다.
이해받지 못한 순수함이, 언젠가 이해되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믿으며.
그녀들과 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살아가는 두 순수함이,
서로를 완성시켜줄 수 있는 이유를
미래의 누군가는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