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과 냉소, 그리고 고결함

by 신성규

고지능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타인도 나와 비슷한 의식 수준에서 사유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은근한 전제다. 이는 순진한 낙관이자 동시에 위험한 오만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복잡한 사유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며, 사회적 분위기나 집단적 관습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나름의 생존 방식이며, 그들에겐 그 방식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고지능자는 종종 이러한 현실에 좌절한다. 자신은 수많은 가능성과 변수, 인과관계를 고려하며 진지하게 사유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환멸이다. 환멸은 세상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감정이다. 고지능자일수록 세상에 대해 더 정교하고 높은 이상을 품는 경향이 있기에, 그 이상이 배신당했다고 느낄 때 받는 충격도 크다.


이 환멸이 쌓이면, 곧 냉소로 이어진다. 냉소는 단지 무관심이 아니라, 세상을 비웃고 모든 가치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지성을 자부하던 사람이 결국 인간 전체를 조롱하게 되는 이 자기 파괴적 전이는, 종종 깊은 고독과 단절로 귀결된다.


하지만 진정한 고지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재구성하는 능력. 환멸을 냉소로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 틈에서 ‘타자를 이해하려는 겸손함’으로 전환시키는 성찰의 힘.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은 자기 안에 갇혀버린다.


냉소는 똑똑한 사람의 비극이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운명은 아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깨닫고도 여전히 대화할 수 있는 마음, 이해받지 못해도 계속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오히려 지능보다 더 어려운 고결함일 수 있다. 지성은 방향을 잃으면 무기가 되지만, 방향을 가진 지성은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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