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by 신성규

나는 오랫동안 내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믿었다.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며 편안해한다고 느낄 때면, 그건 내 감정적 공감의 결과라고 여겼다.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흘러가는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말을 잘 못하는 것이, 단순히 말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무언가 말하려 애쓰지만 중심이 어긋나 있고, 그 틈에서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말에 뼈대를 세우고 있었다. 말의 끝과 시작 사이, 빈 구절 사이에서 나는 의미의 윤곽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내가 ‘배려’를 한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사고의 도구가 되어주었음을 알아차렸다. 상대가 하지 못한 문장의 정리를 내가 대신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술적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말에 형태를 부여하고 방향을 잡아주었다. 그것은 감정적 동기에서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논리적 감각과 구조 인식의 작동이었다.


이런 인식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고의 혼란을 정리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이 시대의 빠른 말들, 비약된 감정들, 부정확한 생각들 속에서 더 필요해지고 있다. 말의 구조를 세우는 일은 곧, 생각의 집을 지어주는 일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팔로워 139
이전 26화환멸과 냉소, 그리고 고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