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형 인간의 한계

by 신성규

지적 열망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이상하게도 ‘지식’을 수집하는 방식에서 멈춰버린다. 이들은 무언가를 깊이 알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어떤 사실을 기억해 두고 그것을 말할 줄 아는 데서 만족한다. 그래서 이들의 말은 자주 백과사전처럼 들린다. 문장은 정확하고 정보는 풍부하지만, 이상하게도 감동이나 공감이 없다. 그건 아마도 거기에 ‘자기 인식’이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인식이 없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다. 그것은 머릿속에 담아두는 수치나 정의일 뿐, 삶과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언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사실을 들었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들은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맥락을 연결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어떤 구조가 작동한 것인가, 이와 비슷한 예는 또 없는가. 고지능자 혹은 사유가 깊은 사람들은 지식을 머리로만 담지 않고, 마음과 세계에 연결하려 한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건 다름 아닌 호기심이다. 호기심이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 나 사이의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끝없이 탐색하려는 충동이다. 호기심은 생각의 문을 열고, 문을 연 채로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이 호기심의 세계를 불편해한다. “그런 건 뭐하러 생각해?” “그건 그냥 그런 거야.” 이렇게 말하며 본질을 묻는 질문을 회피한다. 왜냐하면 그 물음 앞에서는 외운 정보로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백과사전처럼 말하는 사람에게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대개 당황한다. 표면적 사실은 줄줄 외우지만, 그것이 왜 그러한지를 물으면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그들에게는 연결된 사유의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그 간단함이 사실의 뒤에 숨어 있던 공백을 드러내버린다. 그 공백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걸 들킬까 두려워하고, 때로는 질문 자체를 무시하거나 비웃기도 한다. 그렇게 호기심은 ‘쓸데없는 생각’이 되어버리고, 지식은 스스로를 방어하는 갑옷이 된다.


사람들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대신, 호기심을 부끄러워하고, 질문을 유치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배우는 것이 자신을 확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로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배움보다는 뽐냄, 생각보다는 암기, 연결보다는 인용을 택한다.


그러나 진짜 사유는 그런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호기심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세계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질문하게 만들고, 그 질문 속에서 비로소 진짜 지성이 태어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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