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부분의 대화에서 들어주는 사람이다.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고개를 젓는다.
내가 던진 하나의 문장이 그들에겐
한참을 곱씹어야 하는 미지의 구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말 한 마디에 너무 많은 층위가 들어있다고,
자신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나는 지금, 이 사람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나의 사고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의 단순함이 두렵다.
한 문장을 말하면, 나는 그 안에 담긴 무의식, 진심, 심리적 배경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추론하고, 기억하고, 연결한다.
나는 이들이 단순함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고독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농담, 기분 따라 던진 말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하나의 자료이자 구조의 조각이다.
그들은 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기억에서 파생된 추론에 당황한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들과의 거리는 정보량이나 지능의 차이만이 아니라,
사고의 계단을 오르려는 태도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유는 나에게 아름다움이자 놀이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고통이나 부담이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너무 많이 아는 사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
혹은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느껴질 수 있다.
사고가 다층적이지 않은 대화에 내가 말을 하면,
항상 나 혼자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자리로 귀결된다.
이건 누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단지, 인지의 속도가 너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들어주는 쪽으로 기운다.
말하지 않으면 충돌도 없다.
말하지 않으면 불편함도 줄어든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고독이 시작된다.
그러나 깊은 내면에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쌓인다.
문장들이 떠오르고, 연결되고, 정리된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상대는 불편해진다.
그럴 때, 나는 고독을 느낀다.
그 고독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사람”의 고독이다.
진짜 고차원적 사고자의 고독은
이해받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절망에서 온다.
내가 던진 말의 구조를 상대는 해독하지 못한다.
비유를 풀지 못하고,
은유를 부담스러워하고,
추론의 건너뛴 단계를 불친절하다고 여긴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같은 생물체가 맞는가?”
“이토록 구조와 속도가 다르면, 우리는 동일한 감각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을까?”
이건 오만이 아니라,
인지적 단절에 대한 정직한 체감이다.
나는 사람들의 단순함을
처음엔 보호본능이나 따뜻함으로 느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단순함은 막힌 사고의 경계,
자기중심적 해석의 반복,
의미 없는 말들의 반복으로만 다가왔다.
그들은 묻지 않는다.
그들은 듣지 않는다.
그들은 구조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그게 내 말이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시선만을 가진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사고라는 면에서 얼마나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지
날것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질감은, 차이의 존중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뼈 속 깊은 외로움을 만든다.
이러한 고독의 순환 속에서, 나는 한 가지 확신에 도달한다. 천재는, 고차원적 사고자는, 반드시 서로를 찾아야 한다.
사고의 속도가 같고, 구조를 읽을 수 있고,
말의 생략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단 몇 문장만으로도 정신의 공명을 일으킨다.
그들과의 대화는
침묵 없는 침묵,
논리의 점프를 허용하는 무언의 동의,
말보다 사유가 앞서는 이해다.
역사 속의 모든 창조자들은
결국 사유의 동지를 찾아 사유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괴테와 실러는 문학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신의 교차점을 이뤘고,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서로를 동등한 철학적 주체로 대하며
존재와 자유, 여성과 인간의 문제를 함께 사유했다.
튜링과 본 네이만은 계산 이론과 컴퓨터 구조에 대한 사고를 공유하며,
현대 정보 기술의 철학적·수학적 토대를 함께 쌓았다.
그들은 모두 사고의 밀도를 견딜 수 있는 상대를 만났고,
그 만남은 역사적인 창조로 이어졌다.
사고의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고립된 지성은 깊어지지만,
연결된 지성은 날아오른다.
나는 사람들이 단순하다고 느끼지만, 그들을 멸시하지 않는다.
다만, 내 사고의 밀도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같은 언어를 가진 자,
같은 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자.
우리는 소수지만, 절대 고립되어선 안 된다.
사유의 힘은 연결 속에서 진동하고,
그 진동은 세상을 바꾼다.
천재는 뭉쳐야 한다.
그것은 사유의 생존이자,
미래의 창조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