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턴가 세상과 말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단어를 골라 말했지만, 그 말은 허공에 부딪혀 튕겨나왔다.
나는 문장을 던졌고, 그들은 해석 대신 오해를 건네왔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나의 언어는 너의 맥락 밖에 있구나.
나는 기억한다.
그 조그만 사건 하나,
친구의 입꼬리 한쪽이 무너졌던 어느 오후의 표정.
다들 그 순간을 잊었지만,
나는 그 입꼬리에 담긴 숨은 감정의 구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왜냐면 그건, 말보다 진실했으니까.
어릴 적 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쩌면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을지도.
하지만 이제는 안다.
책이 나를 똑똑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나처럼 끊임없이 인과를 추적하려는 자들이 책을 찾는 것이라는 걸.
책은 단지 길이었다.
나는 이미 그 길 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 안 해.”
그 말이 가장 슬프다.
생각하지 않는 삶이 편안하다면,
나는 평생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관찰했고, 분석했고, 감정의 규칙을 외웠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라 연구였다.
그들을 향한 ‘이해’는 점점 ‘해석’으로 바뀌었고,
내 감정은 점점 종이 위의 도면처럼 말라갔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버텼다.
눈치라는 가면을 쓰고, 내 사고를 접어 넣은 채 어울렸다.
하지만 고독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요한 방에 앉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사고를 펼쳐놓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내 사고는 구조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표면을 보지만,
나는 늘 그 구조의 토대가 어떻게 쌓였는지 궁금해 한다.
이게 병이라면,
나는 평생 이 병을 앓고 싶다.
내가 철학을 택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을 분석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항상 모호했고,
그래서 요즘 나는 수학과 공학을 탐한다.
답이 있는 세계, 구조가 완결된 영역.
그 속에서는 내가 모호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불안을 말로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 세계는 내 사고를 환영한다.
나는 여전히 고독하다.
하지만 그 고독은 이제 상처가 아니라 형태다.
그리고 나는 그 형태를 알아보는 이들과 만나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