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학을 흉내내며

by 신성규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별종이자, 괴짜이며, 시대의 잉여물인 나는, 순간의 쾌락과 방종을 언제나 혐오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왜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까? 왜 가식적인 사랑의 고리에 스스로를 묶는 걸까?

그건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은 질문들이었다.


성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은 분명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계는, 그저 더 정교해진 자기합리화와 방어기제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우스울 정도로 그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뇌는 자기 보존의 기제로 가득 차 있고, 그 울타리 너머로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한때 나는 그 울타리를 깨뜨리고 싶었다. 충격을 주기도 했고, 진지하게 조언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이건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방어기제는 생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새 방향을 설정할 능력 없이 절망에 빠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나는 결국 세상이 늘 말하던 그 말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답이다.”


나는 이 말에 오래도록 동의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숙명적인 제한임을 받아들이려 한다.

모든 사람이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믿고 싶지만,

아마 정말, 시간이 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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