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by 신성규


불면증 약을 놓친 밤, 억지로 끌려나온 산책은 운명처럼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어두운 길, 귀뚜라미의 소리에 리듬을 맞추다 고개를 들면, 밤하늘은 낯설도록 아름다웠다. 함께 바라보았을 하늘.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별의 감정 그 자체였다.


그녀와의 이별은 미움도 원망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이토록 순수한 이별은 차라리 잔혹하다. 나는 그녀를 내 마음 속 심판대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은 언제나 제도의 언어보다 혼란스럽고도 인간적이다.


나는 한때 믿었다. 운명처럼 끌리는 이 감정이 언젠가 나를 구원하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운명이 누락된 선택이었다는 듯, 미묘한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그녀의 내면에서 애틋함을 보았고, 그녀는 내 불완전함 너머를 보아주었다. 그런 감정은 인생에 단 한 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애틋함은 곧장 잊힘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랑이란 건, 연애와는 다르다. 사랑은 존재 그 자체를 걸 수 있는 감정이다. 그 사랑은 종종 자신의 존엄까지 시험대에 올린다. 나를 위한 사랑인지, 그녀를 위한 사랑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가장 뜨거운 마음조차 자기애의 변형일 수 있다는 통찰은 나를 주저앉힌다.


그러나 이 감정은 꺼지지 않는다. 불처럼 일어났다. 차라리 욕망이라면 식을 것을. 이것은 맹목적인 그리움이다. 나는 돌을 차고, 어릴 적처럼 투정을 부린다. 내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유치한 것은 아닐까, 이런 유치한 감성이 글을 쓰는 이들의 본성인가. 괴로울 정도로 투명한 내면은 신의 실수처럼 느껴진다.


나는 감정을 너무 잘 느낀다. 세상이 말하는 ‘감성’이라는 단어는 표면적이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감지한다. 사랑조차 누군가에겐 지나가는 기억일 수 있지만, 나에겐 편지를 쓰고도 부치지 못하는 한 생의 은유다. 부치지 못한 편지와, 꺼지지 않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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