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은 왜 싸우지 않을까

by 신성규

세상은 소리를 낸 사람이 승리하는 듯 보인다.

고함을 치고, 주먹을 휘두르고, 요구를 밀어붙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자리를 차지하고, 이야기를 주도한다.

그 와중에 조용한 사람들—

그저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은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불의에 격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모른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어떤 격정보다 더 깊은 고요 속에서.


착한 사람들은 왜 싸우지 않을까.

왜 자신이 억울한데도 침묵하고,

왜 고개를 떨군 채 눈빛을 거두는 걸까.


그건, 아마 그들이 ‘아픔을 줄 수 있음’을 알아서다.

힘을 쓰는 대신, 감정을 삼키는 법을 배운 사람들.

상처가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경험했기에

남에게 그것을 되돌리지 않으려는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이들의 조용한 항의를

약함으로, 무능함으로, 무시해버린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세상 앞에 더 작아지고,

결국 스스로를 탓하며 고통에 잠긴다.


어쩌면, 세상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세상이 아직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가

그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력은 빠르지만, 연민은 오래간다.

파괴는 크지만, 이해는 깊다.

착한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막고 있는 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그런 이들 덕에 유지된다.

소리 없는 배려와 묵묵한 책임감은 시스템의 기초를 만든다.

그들의 무너짐 위에, 우리는 안정을 누리고 있다.

그들의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 세상은 더 잔혹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이 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연민은 약점이 아니라, 문명의 핵심이어야 한다.

고통받는 이들의 슬픔을 사회가 공유하고,

그들에게도 무기가 아닌 ‘존중’을 쥐여주는 일.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구조다.


이제 그들의 눈물이

더 이상 ‘패배’가 아니라

한 시대의 ‘기둥’이었음을 말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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