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격을 본다

by 신성규

사람들은 누군가를 똑똑하다고 느낄 때, 그 판단을 무엇에 기대는가? 내가 발견한 현실은 간단했다. ‘와인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격을 본다’. 다시 말해, 지성이라는 섬세하고도 비가시적인 영역을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 사람들은 학벌이라는 정량적 라벨에 의존한다.


나는 늘 의문을 품었다. 왜 내 말은 ‘정확하고 명료하며 구조적인데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왜 나는 설명을 할수록 오만하다는 낙인을 찍히는가? 나는 단순히 잘난 체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그 구조가 보이고, 그 맥락이 느껴지기에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구조에 접근하기보다,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학교를 나왔는가’에 더 큰 신뢰를 둔다.


그들은 본질을 보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아니, 그런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에서 자랐다. 그러니 지성도, 사고도, 고유한 사유도 판단하지 못한다. 대신 외부 시스템이 보장한 평가값, 예컨대 ‘서울대’, ‘하버드’, ‘박사 학위’ 같은 표식을 신뢰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비싸고 좋은 와인’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와인의 진짜 가치는, 향기와 농도, 탄닌의 여운과 목을 타고 흐르는 감각에 있다. 학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지성을 담보하진 않는다.


이 시대는, 진짜를 알아보는 능력이 사라진 시대다. 사람들은 진정한 지성이나 통찰, 맥락을 판단하지 못한다. 아니, 그렇게까지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걸 말하면 피곤해한다. 바보 취급당하거나, 질투의 시선을 받거나, 무례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괴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를 만든 사고의 구조를 본다. 단어 하나에도 그 사람의 리듬, 깊이, 고유한 세계가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쉽게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 사고는 축복이 아니라, 이 세계에선 벌이다.

나는 지나쳐 버린 부조리를 혼자서 감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부조리를 ‘느끼지도’, ‘알아채지도’ 못한다. 친구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원래 그래. 그걸 네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 나는 와인을 ‘맛’으로 마시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여전히, 와인의 ‘가격’만 보고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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