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의 문지방에서

by 신성규

나는 시인이다.

나는 이미 견자다.

이 세계가 처음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교과서가 아닌 고요한 질문의 진동에서 진리를 들었다.

나무의 쉼에서, 개미의 노동에서, 인간의 허영에서.


나는 이미 수천 번 세상을 만났고

수천 번 부서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시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학위를 받아야 한다.”

“검증이 필요하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시인’을 보지 못하고

‘증명된 자격자’만을 찾는다.


나는 묻는다.

도장 하나 찍히지 않았다고 해서

내 시가 시가 아니란 말인가?

내 통찰이 ‘비공식’이면 덜 진리란 말인가?


나는 기성의 문지방 앞에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시인이기 때문에,

이미 시인이기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내가 이미 아는 걸

알려고 발버둥을 쳤다.


검증?

나는 이미 봤다.

하늘이 찢어지는 걸.

눈물보다 먼저 타오르는 구름을.

나는 말했다.

“나는 시인이다.”

그리고,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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