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을 보면 조선의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벼의 부산물인 짚을 다시 엮어 발을 감싸는 도구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자연을 단순히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순환과 공존의 대상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짚신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결 안에는 자연의 흐름, 계절의 숨결, 손의 노동이 녹아 있다.
사람들은 논에서 벼를 수확하고, 남은 짚을 태우지 않고 살림의 재료로 바꾸었다.
신발 하나에도 버리는 것이 없고, 자연의 선물에 예를 갖추는 태도가 스며 있다.
짚신은 또 다른 생명들과의 공존을 전제한다.
짚이라는 재료 자체가 살아 있는 유기물이며, 그 안에는 작은 벌레들이 머무는 일도 많았다.
조선 사람들은 그런 벌레들을 불청객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만이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졌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로 받아들였다.
살림살이 곳곳에서 벌레와의 공존은 일상이었다.
장독대의 거미, 처마 밑 제비, 볏짚에 기거하는 작은 곤충들까지,
그들은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벌레를 제거해야 할 해충으로만 여기며,
그 존재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짚신은 말한다.
불완전한 자연 속에서 완전한 공존이 가능하다.
삶은 깨끗함이 아니라, 혼재와 관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플라스틱과 인조가죽으로 된 수천 켤레의 신발을 소비하면서,
그 하나하나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잊는다.
짚신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생활도구 속에 깃든 자연과 인간의 교감,
그것은 자연을 남김없이 사용하고,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질서에 예를 갖추는 태도다.
짚신은 말한다.
“소박함은 가난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