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지구에서 죽어야 인정받는다
살아 있는 신은 항상 이상하다
살아 있는 신은 이 세계의 문법에 맞지 않는다.
그는 규칙을 어기고, 흐름을 방해하고,
사람들이 합의한 ‘정상’ 바깥에 존재한다.
그는 너무 일찍 도착한 자다.
너무 선명한 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워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는 위협으로 간주된다.
살아 있는 신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가 죽고 나면 세계는 안심한다.
그의 말과 행동은 이제 더 이상 당장의 위협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로소 해석할 수 있고,
해석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
죽은 신은 해석되고, 정리되고, 제도화된다.
그의 말은 ‘가르침’이 되고,
그의 저항은 ‘정의’가 되며,
그의 고독은 ‘숭고’가 된다.
살아 있을 땐 이상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던 존재가,
죽고 나서야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된다.
예술가도 신의 동족같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가들은 살아 있는 동안 오해받고, 외면받고, 가난 속에 죽었다.
그들이 남긴 작업은
너무 앞선 시야였고,
너무 과감한 질문이었으며,
당대의 질서와 합의에 혼란을 주는 것이었다.
세계는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통찰은 위협이 된다.
그래서 예술가도 신처럼,
죽은 뒤에야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이 세계는 살아 있는 위대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위대한 자는 언제나 살아 있는 동안 ‘이상하다’고 불린다.
살아 있는 동안 이해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이상함의 증거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상하긴 한데, 죽은 뒤엔 전설이 될 거야.”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왜 살아 있는 이상함은 죄이고,
죽은 이상함은 위대한가?
이상함은 살아 있는 신이 받는 세상의 형벌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신이 아직 호흡하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