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마블 자본주의

by 신성규

경제는 하나의 보드게임이다. 마치 ‘부루마블’처럼. 누군가 파산해도 게임은 계속된다. 그러나 파산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이 ‘파산보호’라는 제도의 철학적 기저다. 게임의 공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게임 자체를 지키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이 게임이 생태계로 전환되지 못한 전형적인 구조다. 대기업과 소수의 자본이 모든 주요 생산과 기회를 독점한 사회. 이곳에는 ‘먹이사슬’이 없다. 오직 ‘식인 피라미드’만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유기적 순환은 사라지고, 투기와 거품만이 남는다.

그 투기에 실패한 개인들을 국가가 구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함 때문이 아니다. 게임이 무너지면 모두가 끝나기 때문이다.


결국 현명한 사람은 안다. 게임이 불공평하다면, 그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진짜 저항이라는 것을. 기득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이탈이다. “너희가 만든 게임 필요 없다”는 선언은, 곧 게임의 붕괴를 뜻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이제 돈을 준다. 일하면 돈 주고, 아이 낳으면 돈 주고, 사업하면 보조금 준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체제는 게임인가, 생태계인가?

우리는 참여자인가, 말인가?

그리고 이 게임에서 빠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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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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