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란 무엇인가. 세상을 깊이 통찰할 수록,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 구조의 폭력을 먼저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 많은 지성들은 흑화한다. 세상에 대한 실망, 타인에 대한 불신, 진실을 말해도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체념. 결국 어떤 이들은 무관심이라는 가면을 쓰고, 또 어떤 이들은 냉소의 언어를 빌려 철수한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의 학자에게서 흑화하지 않은 지성, 진실과 온기 사이의 균형을 끝까지 붙잡은 영혼을 보았다. 바로 석영중 교수이다.
많은 학자들이 젊은 시절엔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평가받지 못하고, 구조는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며, 대중은 깊이를 무시하고, 제도는 창의 대신 순응을 요구할 때 그들은 세상보다 더 차가운 태도로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냉정한 관찰자라 부르지만, 사실은 상처받은 감수성의 탈출구로서의 냉소일 때가 많다.
석 교수의 글은 단순히 해석이 아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사유하고, 사람을 향해 사유하는 드문 지성이다. 도스토옙스키를 말할 때도, 톨스토이를 다룰 때도 그 안에 있는 존재의 고통과 인간의 갈망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학문을 차가운 기술로 다루지 않고, 그 사유 속에 존엄과 연민을 담는다. 그것이 그를 다른 학자들과 구분짓는다.
그는 학문을 자기 무기화하지 않았다. 그는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진리보다 인간을 먼저 보았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고, 그의 강의는 언제나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흑화하지 않은 지성은 세상에 드문 희망이다. 지식이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 사유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길, 그리고 지성의 길이 외로움만은 아니라는 증거.
석영중 교수는 그 증거이다.
그는 말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생각하되, 따뜻하게 생각하라.”
“사유하되, 인간을 잊지 말라.”
“이해하되,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