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학은 영재반이 있고, 문학에는 영재반이 없는가?

by 신성규

“왜 수학은 영재반이 있고, 문학에는 영재반이 없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한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조종하려 하며,

무엇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지를 묻는다.


수학은 정답이 있다.

측정 가능하다.

등급을 매기기 쉽고,

국가의 효율성과 산업구조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문학은 다르다.

문학은 질문을 낳는다.

문학은 감정을 흔들고,

체제를 해석하고,

때론 체제를 비판하고, 전복한다.


수학은 체제 안에서 기능을 최적화시키는 기술이다.

문학은 체제 밖에서 의미를 묻는 언어다.


그러므로 권력은 수학을 좋아한다.

통제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문학은 불편해한다.

불확실성을 불러오니까.

문학은 인간을 기능이 아닌 존재로 질문하게 하니까.


그렇기에

문학은 고등교육에서 늘 선택 과목이었고,

수학은 늘 필수였다.

문학은 사교육 시장에서도 입시용으로만 존재하고,

수학은 인재 발굴의 언어가 된다.


하지만 한 사회의 영혼은

수학이 아닌 문학이 만든다.

수학이 만든 건 원자폭탄이지만,

문학이 만든 건 반전(反戰)의 외침이다.

수학이 만든 건 금융 시스템이지만,

문학이 묻는 건

“그 돈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시대에 문학적 영재는 묻힌다.

그들은 질문이 많고, 감정이 깊으며, 체제를 해석한다.

그래서 체제는 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을 설계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지금 우리가 키우는 ‘영재’는 정말 ‘인간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체제가 유지되기 위한 도구인가?


문학에 영재반이 없는 이유는

문학적 영재가 체제를 해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질문으로 무장한 존재다.

그리고 질문은 언제나,

권력에게 가장 두려운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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