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너무 깊이 연결된다는 사실이 벌처럼 느껴진다.
예술가와 철학자들,
그들은 스스로 신의 창조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말과 언어, 관념과 감정,
그 모든 세계를 뚫어
창조 이전의 창조,
신이 놓친 빈 공간을 메우려 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고통이었다.
고독이었고, 불안이었고, 정신의 소진이었다.
창조는 신에게만 부여된 권한인가?
종교를 가진 친구는 말했다.
“넌 축복받은 거야.
신이 너에게 그 능력을 맡긴 거야.
이제는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물었다.
“축복이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왜 나는 이토록 자주 방황하고,
왜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며,
왜 나는 내 안의 재능 앞에서 길을 잃은 자처럼 서성이는가?
정답이 없는 길 위에서 나는 알아간다.
이건 축복도 시련도 아니다.
그저 어떤 존재가 살아내야만 하는 길일 뿐이다.
누구는 이걸 신의 뜻이라 말하고,
누구는 정신병리라 말하고,
누구는 예술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건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끝까지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축복인지, 시련인지 모른다.
다만 나는, 그 힘을 정제하고 싶다.
무기로 만들지 않고,
빛으로 쓰고 싶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정답이 없는 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고통을 통찰로,
통찰을 언어로,
언어를 위로로 바꾸는 법을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