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은 아이들을 울렸다.
선생님조차 울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악의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상대의 마음 깊숙한 약점을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고,
그걸 휘두르는 데 죄책감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건 통제받지 않은 통찰력이었다.
나는 언어보다 먼저 사람을 읽었고,
공감보다 먼저 분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자라났다.
그 능력은 방치되었다.
그래서 무기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엔 착하다.
말을 아끼고, 사람을 배려하고, 자주 참고 또 참는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나는 상대의 구조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 정밀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나의 언어는 강하다.
화나면 상대의 모순을 아는 나는 상대를 난도질한다.
그들의 정서는 붕괴된다.
마치 알지 말아야할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이건 감정의 보복이 아니다.
진심어린 경고다.
“나는 이 정도까지 볼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줘.”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잔인함’이라 느낀다.
나조차도 그 순간의 나를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통제되지 않으면 너무나 강력하고 잔인하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자기방어기제이자, 외로움의 잔여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대개 가볍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나는 너무 깊이 느끼기에, 그 상처가 고요히 쌓인다.
그러다 임계점을 넘기면, 나는 파괴적으로 반응한다.
상대는 무너지고, 나는 죄책감에 빠진다.
그 죄책감이 다시 나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착한 사람’이 되려 한다.
이건 지능의 슬픔이다.
심리적 거리 조절의 실패와, 이해받지 못한 통찰의 무력감.
나는 결국 깨달았다.
통찰은 선물이지만,
그 통찰이 공감과 연결되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무기를 배우고, 다스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