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한 인간은 견디기 어렵다.”
이 말은 나를 멈춰 세웠다.
인류라는 거대한 추상은 사랑할 수 있지만,
그 추상이 구체화된 한 사람.
모순되고, 날 미워할 수도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거의 영혼의 싸움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추상은 환상처럼 다가온다.
“인류”, “평화”, “정의”는 감동을 주지만
막상 옆에서 짜증내고, 나를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사랑하긴 어렵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추상에 있지 않다.
그것은 실체 앞에서 시작된다.
불편하고, 불완전한 타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사랑은 미학에서 실존이 된다.
나는 문득 떠올렸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개념.
그건 어떤 윤리도,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실수투성이인 인간을 받아들이는 무한한 용서와 기다림이다.
인간의 실존을 알고도,
인간의 타락과 배신과 탐욕을 알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거의 해탈에 가까운 감정의 단계다.
신의 사랑은, 감정을 넘어선 의지와 존재의 결정이다.
천재는 누구보다 인간의 불합리를 빨리 읽고,
누구보다 본질에 가까이 가며,
누구보다 깊게 실망한다.
그래서 더 잘 버리고, 더 쉽게 냉소하고, 더 빨리 떠난다.
그러나 진짜 천재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세계를 끌어안는 사람.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천재는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지성 위에 연민을 더해야 한다.
사고의 빠름은 천재를 만들지만,
느림을 견디는 능력은 성숙한 천재를 만든다.
누구나 자기만의 고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통을 지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천재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업적이다.
사랑은 천재가 도달해야 할 최종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