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깨어났다
잠들었던 빛들이 내 피부를 스친다
음의 결, 향의 단층, 숨결의 파편까지도
나는 느낀다. 너무 선명하게
예민하다는 말은 흔히 약점으로 취급되지만,
나에게 그것은 ‘살아 있음’ 그 자체였다.
나는 공기 중의 진동을 듣고,
빛의 농도를 보며,
말의 여백까지도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이 감각은 나를 일으켰다.
무기력과 무감의 어둠에서 나를 끌어올렸다.
사유는 정적을 가르고,
감정은 깨어나는 심장을 닮았다.
그러나,
이 예리함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곧 나를 찌른다
내 안의 칼날이 날 향해 굽혀질 때
나는 사유의 형상으로,
스스로를 찔러 넘어지는 조각상이 된다
빛은 나를 깨웠고
나는 그 빛 속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나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사랑한 이 감각이,
나를 끝내 찢어놓을까 봐.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깊이 느끼고자 하지만,
느끼는 그 깊이만큼 나는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나는 피하지 못한다.
예리함 없이, 나는 나일 수 없기에.
내 안의 칼날이 날 향해 굽혀질 때
나는 사유의 형상으로,
스스로를 찔러 넘어지는 조각상이 된다
빛은 나를 깨웠고
나는 그 빛 속에서...
너무 많이 느끼는 자는
쉽게 상처받는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다.
그건 세상과 너무 밀착해 있는 사람의 운명이다.
감각은 나의 무기였지만,
그 무기는 자꾸 내 쪽을 향한다.
나는 그 칼끝 앞에서 매일 흔들린다.
나는 쓴다.
이 감각이 나를 갈라놓기 전에,
그 예리함을 글로 풀어
외부로 흘려보낸다.
글은 나에게 해방이다.
고통이 언어가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날 상처 내지 못한다.
무너지는 순간, 나는 창조한다.
슬픔이 문장이 되고,
고통이 리듬이 될 때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나를 새긴다.
창조는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감각이 지나치게 살아 있는 자의
의식적인 무너짐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니, 나는 다시 무너질 것이다.
무너져야만, 나는 다시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