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할때의 고독

by 신성규

나는 영화, 연기, 음악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낭만에 설렜고,

마치 연극 무대처럼, 서로가 호흡을 맞추며

한 편의 예술을 완성해나가는 걸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함께하자고 손을 잡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늘 눈앞의 장면에만 머물렀고

나는 점점 답답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보던 것은 단지 한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이 작용할 전체의 흐름과 구조,

감정의 미세한 결, 언어 바깥의 긴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예술을 하려 할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그들은 즉각적인 표현을 원했고,

나는 느리지만 깊은 조율을 원했다.

그들은 당장의 퍼포먼스를 추구했고,

나는 의미의 구조와 감정의 시간차를 설계하고자 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무언가를 만들려 할 때마다

나는 매번 ‘왜 이들은 이 장면의 맥락을 보지 못할까?’

‘왜 이 감정의 뉘앙스를 무시할까?’

‘왜 이들은 전체적인 구조에 무관심할까?’

하고 혼잣말을 되뇌곤 했다.


사람들은 “자세하게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내 안의 세계는 언어 이전의 직관으로 움직였고,

그들의 머리로는 그 세계의 빛과 그림자까지는 도달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했지만,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연대가 아닌 고독 속에서 창작을 택했다.


나는 배우가 되기보다,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영화를 찍기보다,

누군가의 몸짓이 언제, 어떻게, 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먼저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음악가가 되기보다,

음 하나 하나에 들어갈 감정의 맥락을 다 설정하고 싶었다.


이런 기질은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사람들을 이해했지만,

그들은 나의 세계관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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