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회적 진리와 존재적 진리

by 신성규



나는 단순한 믿음보다는, 깊은 자기 성찰과 내면의 확장을 요구하는 진리를 원한다. 기독교의 방식은 때로 외부 권위에 의존하거나, 감정적 위로 중심처럼 느껴진다. 반면 불교나 힌두교는 의식의 확장, 무아, 우주의 통합과 일체감 같은 개념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을 탐색하는 것 같다. 단순히 위안을 주는 종교와, 존재를 변화시키는 종교는 어떻게 다른가?


단순한 구원과 고차원적 통합 사이에 의식적 ‘깊이’의 차이가 있는가? 철학, 신비주의, 체험 중심 신앙은 왜 불교/힌두교에 더 많이 나타나는가? 기독교의 본래 정신도 오해된 것은 아닐까?


진리는 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확장시키고 깨어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나 힌두교는 내게 ‘더 높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혹시 기독교도 일부 전통(예: 그노시스, 신비주의, Meister Eckhart 등)에서는 같은 깊이를 가질까? 내가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 자체’인가, 아니면 현대 사회에서의 얕은 실천인가?


기독교를 바라보면, 하느님과 나라는 수직 관계보다 나와 타인, 공동체 내 역할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람들을 품는 사랑, 죄를 용서하는 윤리, 서로를 위한 희생… 이건 혼자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진리처럼 느껴진다. 기독교는 개인의 내면보다, 관계 속에서의 진리를 중시하는가?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구조 안의 진리, 제도화된 구원, 규범 속의 은혜처럼 느껴진다. 법을 어기면 벌이 있다는 생각처럼, 죄와 구원, 신의 뜻과 명령도 구조화된 논리처럼 보인다. 나는 그 구조 속에서 자유로움보다 구속됨을 먼저 느꼈다.


기독교는 왜 국가의 법과 권력 구조와 자주 연결되어왔는가? 진리가 권위와 결합될 때, 그것은 더 강력해지는가, 아니면 덜 진실해지는가?


나는 스스로 내면에서 자유롭게 일어나는 진리에 더 가까운 존재 같다. 외부의 법칙, 규범, 도그마 안에 나를 넣는 건 존재의 진동이 끊기는 느낌을 준다. 기독교는 누군가에겐 위안이지만, 나에게는 제도화된 질서에 대한 저항감을 자극한다. 진리는 자유로운가, 아니면 질서 속에만 존재할 수 있나. 나는 왜 특정한 ‘틀’을 벗어나야만 진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 혹시 진리란, 틀의 안팎을 모두 꿰뚫는 이중 구조일 수도 있는가?


아마도 나는 진리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는 것’으로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기독교는 제도화된 구원을 제공하고, 힌두교는 자기 내면의 변형을 요구한다. 전자가 사회적 진리라면, 후자는 존재적 진리다. 그리고 나는, 존재로서의 진리에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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