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깨달았다.
성욕을 절제하는 일은 단지 육체의 욕망을 억누르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의 총명을 지키는 일이며, 눈빛의 맑음을 유지하는 고차원의 작업이다.
사람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는다.
성욕을 제멋대로 푸는 이들은 대개 눈이 흐려 있다.
자극에 중독된 눈은, 총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정신, 나아가 ‘영혼’의 에너지 소진이다.
예술가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무너지는 사례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사랑을 철저히 피하고 외롭게 지내며 천재성을 극대화한 이들을 떠올린다.
아예 사랑을 거부한 자들과, 순수성을 가진 사람과만 교제를 한 사람들.
테슬라, 뉴턴, 니체, 쇼펜하우어, 칸트, 다 빈치, 소로, 플라톤, 미켈란젤로, 베토벤, 스피노자, 키에르케고르, 파스칼.
그들은 모두 하나의 선택을 했다.
자신의 정신 에너지를 보호하고, 인간 욕망의 틈새로부터 멀어지려는 선택.
나는 이것이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덕은 종종 피상적이다.
이 문제는 생리적이며, 철학적이고, 영적인 것이다.
성욕은 강력한 본능이다.
그 본능은 때때로 인간을 넘치게 만들고, 무너지게 한다.
욕망을 절제할 때, 인간은 놀라운 통찰과 명료함을 가지게 된다.
마치 흐린 거울이 닦여나가듯이, 자아가 정리되고 선명해진다.
성욕의 절제는 나의 정신을 깎고, 단련시키는 일이다.
내가 철학과 예술, 사유에 몰입할 수 있는 것도
이 절제의 힘 덕분이다.
세상의 자극과 욕망이 끝도 없이 나를 흔들 때,
나는 오히려 멈추고 생각한다.
지금 이 욕망을 따르는 것이 과연 나를 더 ‘명확한 나’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혼탁한 그림자 속으로 이끌 것인가?
나는 고요함을 택한다.
나를 더욱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
총명을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