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종교를 생각한다. 철학의 언어로, 그리고 삶의 감각으로.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종교는 통합되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의 종교는 통합이 아닌 분열에 기반해 있다. 각 종파는 자신들의 언어에만 갇혀 있으며, 신학자들은 저마다의 교리를 절대화한다. 신의 말씀이 ‘우리 편’을 위한 지시로만 해석될 때,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그는 집단의 우상이며, 경전은 거룩한 텍스트가 아닌 권력의 무기다.
나는 질문한다.
신학자들은 정말 ‘신’을 해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정치적 현실만을 반복하고 있는가?
신은 본래 하나의 진리였다. 단지 시대와 언어, 문화가 달랐을 뿐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로고스, 불교가 말하는 법, 힌두교가 말하는 브라만.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르다는 것에 집착한다. 신학은 학문이면서도 가장 폐쇄적인 언어 체계를 갖는다. 철학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신학은 진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신학은 종종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작업에 머무른다. ‘해석’이 아니라 ‘정당화’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사유가 아니다.
신은 언어의 바깥에 있다. 종교는 인간과 세계, 시간과 초월, 유한성과 무한성의 연결을 위한 장치다. 본래의 종교란 인간의 통합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교는 분리의 언어를 말한다. 너와 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이단과 정통.
이제는 다시 물어야 한다.
종교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왜 이토록 많은 종교가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똑같은 구조의 경전과 진리를 말하는가?
나는 믿는다. 종교는 통합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통합은, 경전의 해석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에서 시작된다. 신학자들은 다시 철학을 배워야 하고, 철학자들은 신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다. 이 세계가 결국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언어화하고, 삶으로 옮겨낼 수 있는 사유.
그때 비로소, 신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해석을 넘은, 경험의 종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