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플랫폼이자 시스템

by 신성규

서울은 단지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행정적 명칭을 넘어, 국가 그 자체의 압축된 상징이자, 경제·문화·기술의 집중된 노드다. 서울을 분석한다는 것은 곧 한국의 현재를 해석하는 일이며, 서울의 미래를 묻는 것은 이 나라 전체의 운명을 묻는 것이다.


서울은 수도 이상의 위상을 갖는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정치, 산업, 교육, 의료, 미디어 등 거의 모든 국가 기능이 서울로 수렴되어 있다. 이건 ‘도시국가’에 가까운 자생력이며, 서울이 멈추면 대한민국도 멈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 어떤 지방 거점도 서울의 ‘하위 대체재’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는 서울이 단순한 도시를 넘어선, 초집중형 거대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다른 대도시들 속에서 도쿄, 베이징, 상하이와 비견되는 유일한 한국 도시다. 오사카, 광저우, 타이베이, 방콕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규모가 아니라 도시가 갖고 있는 ‘국가 지배력’과 ‘문화적 발신력’ 때문이다.


도쿄는 일본의 모든 시스템을,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적 비전을, 베이징은 정치와 문명의 뿌리를 상징한다. 서울 역시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대표하는 전방위적 상징 도시다.


경쟁 도시들과 비교할 때 지리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도심 안에 4대문, 고궁, 한강, 산이 공존한다. 이는 세계 대도시 중 보기 드문 형태다. 예를 들어, 도쿄는 평지 위에 확장된 산업 도시다. 베이징은 엄격한 계획도시로, 권력 중심지로 기능한다. 뉴욕은 근대 자본주의의 결정체로, 자연보다는 철과 콘크리트의 상징이다. 하지만 서울은 산과 문화유산, 역사적 장소, 그리고 현대적 기능이 겹겹이 존재한다. 이는 서울이 단순히 기능적인 도시가 아니라, 정신적 정체성을 가진 도시임을 뜻한다.


동시에 위험한 집중 구조를 가진다. 도시의 경쟁력은 높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이 도시에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는 전국을 뒤흔든다. 지방 분권은 제도적으로 외쳐지지만, 현실적으로 서울 이외의 도시는 그 자체로 자생적 성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중교통은 세계적 기준으로도 ‘압도적’이다. 교통 접근성과 효율성 면에서 세계적인 대도시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지하철만 해도 23개 노선, 수도권 전역을 촘촘히 연결하며, 1일 평균 이용자 수는 800만 명을 넘는다. 특히 서울 지하철은 정시성, 청결도, 정보 안내 시스템, 환승의 효율성 등 많은 면에서 도쿄, 뉴욕, 런던, 파리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버스 체계는 사적 교통수단을 대체할 만큼 촘촘하고 다층적이다. 광역버스, 시내버스, 마을버스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있고, 교통카드 하나로 지하철, 버스, 택시까지 자동 연결되는 구조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흔하지 않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 자랑이 아니다. 서울은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도시적 삶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도시다. 이는 곧 경제적 약자나 젊은 세대, 외국인 거주자에게도 매우 개방적인 도시성을 의미한다. 서울은 도시로서의 경쟁력뿐 아니라, 세계 대도시 중 손에 꼽히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난할수록 서울에 살아야 한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모순처럼 들린다. 서울은 집세가 비싸고, 물가는 높고, 경쟁은 날카롭고, 삶은 조여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다. 서울은 플랫폼이다.


서울은 모든 가능성의 집약체다. 직업 정보, 공공서비스, 복지 시스템, 문화 자원, 교육 콘텐츠, 기술 교육, 스타트업 생태계… 이 모든 것이 서울에는 존재하고, 지방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 늦게 도착한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기회는 여전히 물리적 접근성에 좌우된다.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며, 네트워크는 도시의 교차점에서 더 치밀하게 작동한다. “당신이 누구를 아느냐보다,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지방은 아름다우나, 고립된 폐쇄성과 기회의 단절을 안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지방에 머물 때, 그들은 도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다.


서울은 살인적인 집값과 불평등, 청년 세대의 소진과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상징이지만, 그럼에도 기회를 준다. 그 기회는 피곤하고 불공정하며 때로는 인간을 기계처럼 만들지만, 여전히 그것은 무(無)보다 낫다.


“서울은 기회를 준다”는 말은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저 사라지는 것보다 살아있을 확률이 조금 더 크다는 뜻이다.


서울은 시스템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자체로 불공정하다. 그러나 시스템 안에 있을 때 그 불공정과 싸울 수 있다. 고통의 땅이지만, 동시에 발언권이 존재하는 장소다. 비판할 수 있는 언론이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고, 상호작용 가능한 권력 구조가 있다. 외곽에선 아무리 소리쳐도 그 소리는 도달하지 않는다.


서울은 남겨진 열쇠다. 그 열쇠는 무겁고 거칠지만, 그마저도 쥐고 있지 않다면 거대담론의 문 앞에조차 설 수 없다. 지방의 평온함은, 이미 세상을 산 자들의 안식처일 수 있지만, 세상을 아직 시작하지 못한 자에게는 고립된 현실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말한다. 그곳에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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