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이미 휴머노이드

by 신성규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의 리액션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건조한 미소, 감동적인 말을 해도 무표정한 눈빛.

도대체 왜 우리는 이토록 반응에 인색해졌을까?


처음엔 단순한 사회적 예의의 결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보다 더 깊은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액션’이란 단순한 반응 그 이상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정서적 연대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 감정의 흐름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감탄도, 감동도, 기쁨도 무언가 ‘대단한 것’에만 허락되는 감정처럼 되어버렸다.

소소한 배려, 작은 친절, 사소한 유머에는 더 이상 ‘감사’나 ‘웃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은 결과 중심적 사회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해야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작은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당연함으로 덮는다.

그러니 누군가 뭔가를 해도, 리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감탄은 줄고, 기대치는 끝없이 올라간다.

그 결과, 사람들은 받아도 감사를 느끼지 않고,

해도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감사는 감정을 살아 있게 만든다.

“고마워요”라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작은 눈빛 하나가 마음을 데워준다.

그런데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작은 친절을 삶의 기본값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무표정한 얼굴 뒤엔, 사실 ‘고맙다’는 말을 잊어버린 감각적 무감각이 자리 잡았다.


리액션이 줄어든 사회는 차가워진 관계의 지표다.

서로에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영향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정서적 무풍지대’가 되어갈수록,

공동체는 점점 개인의 섬들로 흩어져간다.

리액션은 단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탄하고, 사소한 친절에도 감사를 전하고,

서툰 시도에도 미소로 응답하는 법을.

리액션은 연극 무대의 박수처럼,

살아있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는 행위다.


무표정한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

작은 리액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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