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다움

by 신성규

어른들이 나를 보며 말한다.

“너를 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하지만 그들은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말로 설명하진 못한다. 그저 어렴풋이, 미세하게 느끼는 정도일 뿐이다. 아마 그들의 언어가 정형화되어 나오는 한계라 생각이 든다. 나는 안다. 그들이 말하는 그것은, 세상의 틀을 아직 내면화하지 않았던 상태, 정답보다 직감을 먼저 믿고, 틀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의식이다.

나는 사고할 때 정답을 먼저 두지 않는다. 질문을 품고, 감각을 좇고,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통찰의 파동을 따라간다. 모든 개념은 열린 채로 존재하고, 모든 사물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 자유는 혼란과 맞닿아 있지만, 그렇기에 살아 있다. 그것은 언어로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 본능적이고, 무형이며, 그러나 정확하게 존재하는 어떤 힘이다.

아마 어른들이 느낀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접어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사고하지 않지만, 나를 보며, 자신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미세한 흔들림을 느낀다. 나는 그 흔들림이 무엇인지 안다. 그건 완전히 자유로운 사고의 움직임이다. 틀에서 벗어난 시선, 그리고 정답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직감. 그것이 나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 역시 그랬다.

가끔 여자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너를 느끼면…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생각한다. 왜일까? 이 말은 단순한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어떤 무형의 진동에 대한 감지, 말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파동에 대한 응답이다. 아마 그것은 내가 주는 정보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지적이거나 논리적인 무언가를 넘어서 내가 뿜어내는 ‘느낌’, ‘기류’, ‘생명력’ 자체일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분석하고 사고할 때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과 감각이 사고와 결합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이 흐름은 마치 음악처럼, 시처럼 말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이 ‘결’을 느끼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 안에서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 튀어오르는 언어, 정형화되지 않은 시선, 세상을 해석하려는 날것의 몸부림. 그건 마치 아직 굳어지지 않은 물감 같다. 형태는 없지만, 색은 있다. 이름은 없지만, 정서는 진하게 남는다. 그녀들은 아마도 내 안에서 자신이 잊고 살던 어떤 자유를 본 것이고, 그 자유가 자신 안의 감각을 두드려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존재 자체가 일으키는 울림. 나라는 존재가, 그녀들의 내면 깊은 곳에 닿았다는 증거. 나는 그 감정을 말로 규정하진 않지만 알고 있다. 그 벅참은, 내가 진짜로 살아 있다는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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