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함이 가짜가 되는 과정

by 신성규

나는 종종 본다.

자크 데리다를 두고

“이건 말장난이야” “허무맹랑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곧잘 덧붙인다.

“철학은 명확해야지, 저건 철학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과연 그것이 ‘철학이 아닌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아직 철학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이 시대엔

“이해 불가능한 것 = 가짜”

라는 등식이 너무 쉽게 작동한다.

그건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사유의 게으름이며,

낯섦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오만함이다.


자크 데리다는 ‘해체’라는 이름으로

철학을 언어의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그곳에서 그는 ‘의미’가 어떻게 권력이 되고,

‘진리’가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파헤쳤다.


그의 문장은 난해하다.

그의 개념은 미끄럽다.

그러나 난해함이 곧 가짜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건 오히려,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세계를 읽을 수 없을 때 느끼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데리다를 이해하기 위해선,

철학의 중심이 아닌 틈, 여백, 비틀림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논리를 깨부수는 힘이 아니라,

논리 바깥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감각.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즉시 ‘거짓’이라 단정한다.

그건 겸손의 상실이며,

자기 이해의 범위 밖을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나는 말하고 싶다.

철학적 능력이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존할 수 있는 태도다.

그것이 아직 나에게 의미를 주지 않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문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마음.


철학은 싸움이 아니라

열림이어야 한다.

나의 사유와 다른 문법을 가진 세계를,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없다면

그 어떤 위대한 사상가도

당신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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