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커피를 배우고 싶어졌다.
향에 취해, 농도에 빠져, 그 안에 스며든 어떤 ‘의식’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의 상상은 미끄러진다.
커피를 배운다는 것이 왜 이토록 우스운 장면으로 흘러가버리는 걸까?
장면은 이렇다.
나는 커피에 대한 진지한 갈망을 품고,
다방 레지에게 가서 말한다.
“저 커피를 배우고 싶어요.”
그러자 다방 레지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자, 여기 커피믹스 하나, 뜨거운 물 반, 프림은 좀 덜어. 그게 요즘 스타일이야.”
배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플라스틱 컵, 다 쓴 프림통,
전자레인지 위에 놓인 주전자.
나는 지금 커피를 배우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태도의 슬픔을 보고 있는가?
이 장면은 하나의 은유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커피”인지,
“커피를 배운다는 제스처가 낳는 위계와 코미디”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왜 진지한 배움을 시도할 때마다
이 우스운 현실에 고꾸라지는가.
마치 철학을 배우려 했더니
누군가 “자, 칸트는 애들이나 읽는 거야”라며
만화책을 건네는 것과 다름없다.
커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농도였고, 깊이였고, 향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늘 ‘믹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가루와 물의 배합, 그것이 우리가 허락된 진지함의 최대치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미끄러지는 상상 속에
어쩌면 더 진짜의 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배움이란 그런 것이다.
진심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의 풍경 안에선 언제나 약간의 풍자가 된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커피를 생각한다.
커피의 본질은 그 미끄러짐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어쩌면 나는 커피가 아니라
배우고 싶다는 내 태도 자체를,
우습지만 순수하게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