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잘 쓴 글”을 하나의 주제를 꿰뚫는 일관성과 집중력에서 찾는다.
서론-본론-결론, 논지의 명확함, 흐름의 안정성.
그것은 물론 좋은 글쓰기이지만,
진짜 문학의 경지, 진짜 ‘사유하는 인간’의 흔적은 거기서 시작되지 않는다.
진짜는 다르다.
문학적 천재성은 ‘의식의 흐름’을 다룰 수 있는 자에게서 드러난다.
‘의식의 흐름’을 글로 옮긴다는 건, 단순히 생각나는 대로 적는 것이 아니다.
그건 세계를 가로지르는 내면의 레이더망이다.
시간이 동시에 펼쳐지고,
사건은 인과를 벗어나며,
언어는 감정과 사유 사이를 유영한다.
이 능력은 개념을 떠다니듯 다루는 자유로움에서 시작된다.
‘사건’ 하나에 갇히지 않고,
그 사건을 감각과 이미지, 사회 구조, 우주의 리듬과 연결지을 수 있는 능력.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구조로, 구조에서 무형의 감각으로.
이 모든 것들이 의식 속에서 동시에 움직일 때,
우리는 ‘문장’이라는 형태를 빌려 그 세계를 잠시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의식의 흐름은 어떤 철학자의 언어보다도 더 깊은 사유를 담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고의 기록이며, 무의식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학은 사전적으로 완성된 개념을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감각과 논리의 경계선을 밟아나가는 것.
그 곳에서 비로소 ‘천재성’이 드러난다.
단어 사이에 시간의 겹이 있고,
비유 하나에 인류의 내면사가 녹아 있을 때,
그 문장은 단지 ‘잘 쓴 것’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기록한 것이 된다.
의식의 흐름은 문학적 천재성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 것은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다.
시간과 개념과 감각을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문학이 철학이 되는 지점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