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기업화를 경계하며

by 신성규

정치는 다수의 목소리를 듣는 기술이라지만,

실상은 다수의 숫자만을 세는 기술에 불과할 때가 많다.

소수의 고통은 뉴스에조차 걸러지고,

사회적 약자는 ‘비효율적인 유권자’로 분류된다.


그들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영향력이 없고,

고통을 말하지만, 정치적 파급력이 약하다.


나는 그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다.

국가란 숫자의 합이 아니라, 의미의 집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약한 이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제 ‘기업가 정신’이라는 허울 좋은 효율의 이름 아래,

가장 손익분기점이 낮은 존재들을 ‘계산 밖’에 둔다.


기업가형 지도자.

그 말은 오늘날 박수받지만, 나는 그것이 국가를 망각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회사가 아니며, 공동체는 이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최소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회를 기업처럼 운영하려는 시도는 결국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누군가를 생략해도 괜찮은 사회가 된다.

말 없는 자들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들은 버려진다.


정치는 그렇게 비인간적인 효율성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아직도 숫자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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