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너무 똑똑해졌을 때,
동시에 잔인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을 찢고, 의미를 해부하고,
사람들의 말과 마음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수록—
나는 음악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멜로디는 흐르지 않고,
악기는 ‘소리’가 아니라 ‘구조물’로 들리며,
모든 음악은 하나의 단조처럼 평면적이고 무감각하게 다가온다.
그때 나는 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순수성이 굳어졌다는 것을.
내 감각이, 내 감정이,
해석과 분석으로 덮여버렸다는 것을.
음악은 항상 내게
가장 먼저 반응하던 세계였다.
단 하나의 소리, 하나의 진행만으로도
내 속에서 무언가가 일렁였고,
나는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감정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무음 속의 나락을 느낀다.
해석이 감각을 압도할 때,
순수성은 서서히 말라간다.
이런 순간, 나는 진심으로 두렵다.
이해는 했지만, 느끼지 못하는 나.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것도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나.
그건 마치—
“살아있으나 생명이 없는 상태”와 같다.
나는 믿는다.
음악을, 예술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위해선
극한의 순수성이 필요하다고.
그건 무방비함이고,
자기 해체에 가까운 투명함이며,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을 수 있는 여림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여림이 무너질 때
가장 똑똑해진다.
그러나 그 똑똑함은
결코 나를 살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음악을 느끼는 나를 잃을까 봐 두렵다.
그건 나의 중심이 사라지는 일이고,
인간으로서의 온기,
예술을 향한 경외,
삶에 대한 감동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말한다.
“지금, 나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