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미련한 집착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인간성의 증거다.
이 기능과 효율, 통제와 목적의 시대에
사랑이라는 무기능적 감정에 인생 전체를 건다는 것—
그것은 단지 낭만주의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프랑스인들은 그 진리를 이미 오래전 깨달았다.
그들은 실용성과 이익의 계산보다,
‘의미’에 자신을 던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 의미란 결국, 사랑이다.
파리에선 연인이 거리를 걸으며 싸우고, 울고, 화해하고, 키스한다.
그 광경은 목적 없는 감정의 흐름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을 통해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견딘다.
프랑스의 사랑은 격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의 불꽃이 아니다.
그 사랑은 고독을 견디며 생겨난다.
그 사랑은 존재가 갈망하는 것,
즉 “내가 누구인지를 누군가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본능의 발현이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건네는 용기다.
거기엔 계산도, 보장도, 되돌림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무모함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감정의 중력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다시 그것을 체험하지 않으면 매번 잊는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그 잊혀진 감정을
예술과 일상, 문장과 시선, 술잔과 음악 속에 살아 있게 해왔다.
사랑은 해답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유일하게
‘나’와 ‘너’를 구분하면서도, 동시에 잇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며,
음악 이전의 리듬이며,
시간 이전의 기억이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는 것.
그것은 가장 인간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를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해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