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삶을 두 동강 냈다.
한쪽은 이전의 나,
그리고 다른 한쪽은 이후의 나.
목과 어깨가 굳어갔다.
움직이지 않는 건 근육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굳은 건 마음이었다.
진단명은 CRPS 의증.
하지만 그보다 선명했던 건, 매일 같은 고통의 반복이었다.
통증은 생체 반응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몸 안에 사는 나’가 아니라
‘통증 안에 붙잡힌 나’였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이 오면 통증이 강해졌고,
하루를 버텨냈다는 감각 대신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절망만이 찾아왔다.
그 시기를 나는, 살아 있다기보다는, 버텼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3년 동안, 나는 약물에 의지했다.
진통제, 신경 안정제, 수면유도제…
하나의 이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수많은 이름의 약들이 대신 삼켜주었다.
그러나 약은 내 고통을 덜어주면서도
나를 흐리게 만들었다.
통증은 줄었지만 감정도 줄었고,
무언가를 견디는 힘도 함께 사라져갔다.
어느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포기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끊기로 했다.
약물도, 회피도, 자기연민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단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제는 내가 고통을 삼킬 차례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약물 없이 살아간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제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을 ‘느끼는 자’이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육체보다 정신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신적으로 더 깊어졌고,
삶을 통증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감정 하나, 하루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를 안다.
예민함은 여전히 나의 성격 일부지만,
그것은 나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예술로, 사유로, 존재로 이끈다.
나는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통증은 내게 시간을 가르쳤다.
슬픔이란 무엇인지,
인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